[J네트워크] '더 퀸 오브 바스켓볼'
루시아 해리스. 영화 팬에겐 낯선 이름 하나가 지난달 27일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했다. 낯설 수밖에 없는 게, 그는 1970년대 활약했던 미국 농구선수, 그것도 흑인 여자 선수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퀸 오브 바스켓볼(The Queen of Basketball)’이 아카데미 단편 다큐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인터뷰 형식인 다큐는 해리스가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속팀인 미시시피주 델타주립대는 여자 대학농구팀인데도 전국적 인기와 관심의 주인공이 된다. 지역 리그에서도 보잘것없던 팀이었는데, 그가 2학년이던 1975년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여자 대학농구 최초로 메이저 방송사가 미국 전역에 중계했다. 델타주립대는 우승했고, 그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3학년인 1976년에도, 4학년인 1977년에도 팀은 우승했고, 그는 MVP가 됐다. 특히 1977년 결승전은 여자 농구경기로는 처음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렸다. 당연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여자농구가 처음 정식종목이 된 대회다. 해리스가 활약한 미국은 은메달을 차지했다. 해리스 농구 인생 하이라이트는 1977년 미국 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다. 뉴올리언스 재즈(현 유타)가 7라운드(전체 137순위)에서 그를 뽑았다. 그보다 8년 전인 1969년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현 골든스테이트)가 데니스 롱이라는 여자 선수를 지명한 적이 있다. 이때는 관심을 끌기 위한 지명이라는 평가였고, NBA 사무국도 승인하지 않았다. 해리스는 NBA 구단이 뽑고 사무국이 승인한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해리스는 NBA 코트를 밟지는 못했다. 여자 선수는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결혼을 선택했고 임신 중이었다. 그는 모교 농구팀 코치를 거쳐 고교 체육교사로 평생 살았다. 다큐에서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수많은 여자 스포츠 선수들이 빼어난 실력에도 더는 뛸 곳이 없어 운동을 그만두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에는 올림픽이 혼성 종목을 늘리고 각종 대회가 남녀 상금 차를 없애는 등 성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아카데미가 이 다큐에 상을 준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노력에 대한 평가일 거라 생각한다. 뒷얘기가 좀 있다. 이 다큐는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 섹션(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NYT는 자신들의 첫 아카데미상이라고 환호했다. 신문사도 아카데미상을 받는 시대다. 또 NBA 전·현직 스타인 샤킬 오닐과 스태픈 커리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두 사람에게도 첫 아카데미상이다. 해리스는 아카데미 시상식 두 달 전인 올해 1월 6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혜수 / 한국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J네트워크 바스켓볼 여자 대학농구 여자 선수 오브 바스켓볼